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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로 500만원을 40억원 이상으로 불린 대전 L씨의 투자

조~~ 아 2006. 1. 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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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로 500만원을 40억원 이상으로 불린 대전 L씨의 투자

출처: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500만원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7년 만에 40억원 이상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대전에 사는 L씨(52-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86년1월 2000만원으로 처음 주식투자를 했다. 아무 주식이나 사도 올랐던 당시 호황 덕분으로 2년도 안돼 5억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회오리로 5억원을 모두 날리는 고통을 겪은 뒤 1998년6월부터 화려하게 재기했다. L씨가 겪은 주식투자의 부침과 그의 재테크 인생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1. 현금의 힘, "50% 싸게 살 수 있다"



350만원짜리 장롱을 절반도 안되는 150만원(정가의 43%)에 살 수 있을까? 420만원짜리 소파를 200만원에 사고, 12만5000원짜리 구두를 6만원 안팎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부자들은 쉽게 해 낸다. 주식투자로 500만원으로 7년 만에 40억원 이상으로 만든 대전의 L씨는 가구나 가전제품, 옷 등을 살 때 ‘절반 가격’이 아니면 절대로 사지 않는다.

그 의 ‘알뜰 구매’의 비결은 바로 ‘현찰 매수’다. 그는 “가구나 가전제품을 살 때는 월말의 저녁 때 현금을 들고 간다. 물건을 고른 뒤 흥정할 때 현찰로 계산한다고 말하고 무조건 50% 할인해달라고 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뛰지만 ‘싫으면 관두라’라면서 문을 열고 나오면 ‘왜 그러시냐’면서 100% 절반 값에 팔겠다고 한다”고 밝혔다. 현찰이 50% 할인이라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서도 신용카드 하나 달랑 들고 100만원이 넘는 고가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러 간다. 돈이 있어도 은행 예금에 넣은 뒤 굳이 신용카드를 쓰려고 한다. 은행 정기예금 이자가 세금 빼면 연2.8%에 불과하고, 신용카드를 써서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를 받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카드를 쓰면 씀씀이가 헤퍼지는 것을 감안하면 미련한 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백화점에 가서 ‘비싼’ 옷이나 구두를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가 ‘과소비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정가의 50% 아래 가격으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정작 큰 돈은 들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백화점 고가 상품을 싸게 사는 비법은 바로 10~20% 할인해 파는 상품권과 백화점의 정기세일을 활용해 단골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두를 산다고 해보자. 그는 애용하는 상품권 할인점에 가서(때로는 전화로 가져오라고 해서) 현찰로 상품권(백화점 상품권이나 구두 상품권)을 100만원어치 산다. 이때 할인율은 20% 안팎. 이 상품권으로 백화점 세일 기간에 구두를 사면 적게는 10%, 많게는 20% 정도 할인을 받는다. 100만원어치 사면 사례로 10만정도의 상품권을 사례로 되돌려 준다. 결과적으로 40~50% 할인 가격으로 구두를 살 수 있는 셈이다.

그 는 “12만5000원짜리 구두를 6만원 안팎의 절반 가격으로 여러 켤레 사서 친척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사고 싶은 것을 싼값에 살 수 있어 즐겁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어 기쁘다. 백화점에 단골이 돼서 다음에 물건을 살 때 사은품을 많이 받을 수도 있다. 세심하게 쇼핑을 하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비법을 알려주어도 활용하지 않는다”며 “이런 방법이 공개돼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활용하면 내가 이용할 기회가 줄어들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2.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②..주식과의 인연맺기

‘이제는 주식투자할 때다.’

1986 년 1월, 신문들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를 권유했다. 1985년 9월, 플라자협정 이후 ‘3저 호황’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상승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증시는 종합주가지수가 1989년4월1일 1007.77까지 올라 사상 처음으로 ‘주가 4자리수 시대’가 열릴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당시 증권회사 객장에서는 ‘시세판을 향해 볼펜을 던져 맞는 종목은 무조건 사도 돈번다’는 우스개가 유행어로 될 정도였다.

L씨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도 1986년 1월이었다. “당시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식투자할 때’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7000만원 정도의 여유돈이 있어서 어떻게 운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주식투자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 시 7000만원이면 엄청나게 큰 돈이다. 그때 대전의 주공아파트 17평짜리를 사는데 650만~700만원이면 충분했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그가 어떻게 7000만원을 모았는지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하겠다. 미리 밝혀 둘 것은 상속을 한푼도 받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노력해서 번 돈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주식투자를 하기로 마음먹고 모 증권회사 지점을 찾아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증권회사 객장을 찾은 그는 발을 들여놓은 순간 깜짝 놀랐다. 직원들이 큰 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쳤는데, 난생처음으로 그런 ‘환대’를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창구 여직원에게 주식투자를 시작해보려고 한다고 했더니 차장님 한분에게 안내해 주었다. “주식투자는 처음입니까?” “예” “얼마 정도 투자하실 계획이십니까?” “한 50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그 차장은 깜짝 놀라서 똥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그 차장이 “젊은 아줌마가 배포도 크게 웬 5000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한 동안 말을 잊었던 그 차장은 “처음에는 시험 삼아 500만원으로 시작하시지요?”라고 권했다.

하지만 재테크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다고 자신하는 그였다. “째쩨하게 무슨 500만원. 요즘 증시도 된다고 떠드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하는 투자라서 그 차장의 말도 일리가 있겠다고 느껴 2000만원으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2000만원을 넣고 계좌를 만든 뒤 LG증권과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을 절반씩 샀다. 당시는 금융 무역 건설 등 이른바 ‘트로이카 주식’이 증시를 이끌던 시대. 시대 흐름을 타야 한다는 생각으로 증권과 은행주를 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따블’이 났다. 그렇게 붙기 시작한 돈은 1년6개월 정도 지나자 5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2000만원을 1년6개월만에 5억원으로 불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에 그 비결을 소개한다.





3. 대전 L씨의 주식투자 성공 10대 전략<상>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③, "사고 싶은 충동을 참고 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만 산다' ‘(사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대박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남들과 거꾸로 청개구리처럼 투자한다' ….

2000 만원으로 1년반면에 5억원을 만든 대전 L씨의 투자전략은 색다를 게 별로 없다. 누구나 다 아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진리’일 뿐이다. 하지만 L씨가 다른 개미(개인 소액투자자)와 다른 점은 이런 평범한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만 되뇌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자(君子)는 행위로서 말하고 소인(小人)은 세치 혀로써 말한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처럼, 실천의 중요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참여정부 출범이후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는 ‘NATO(No Action Talk Only)'보다는 작더라도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구호를 뜻하는 ‘쉬벌레스(Shibboleth)’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전략1=사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L씨는 주식 매매를 자주 하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하면 잦은 것이고, 1년에 6번 정도 하는 때도 있다. 올해도 지난 1월 포스코를 사고 팔고, 3월에 삼성전자를 매매한 것으로 25%의 수익을 냈다.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의결하던 3월12일 오전(탄핵의결 전) 삼성전자를 53만원에 샀다.

탄 핵 의결로 주가가 급락했지만 팔지 하고 있다가 사상 처음으로 60만원을 넘어선 4월7일 59만원에 팔았다. 그는 “60만원에 팔겠다고 생각하고 샀는데 너무 빠르게 올라 어깨에서 판다는 생각으로 매도했다. 그 뒤 장중에 62만2000원까지 오르기는 했으나 단말기를 꺼놓고 쳐다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주식을 한 번 판 뒤에는 한달 정도 시세판을 보지 말고 새로운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성공한다”고 말했다. 우리 증시격언의 ‘현금을 3일 이상 갖고 있으면 성공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인내하는 것이다.

전략2=아는 주식에만 투자한다.
L씨는 삼성전자를 판 뒤 쉬고 있는 동안, 아는 사람으로부터 ‘(주)LG를 한번 사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곧 잊어버렸다. 나중에 (주)LG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그는 그다지 속상해 하지 않았다. “모르는 주식에 투자하면 돈벌 확률과 잃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는 주식에 투자하면 승률이 훨씬 높다. 돈 벌 수 있는 쉽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길이 있는데 왜 굳이 어렵고 불확실한 길을 가겠느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도 LG를 샀으면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을텐데라며 다시 묻자 “지금까지 LG에 투자한 적이 한번도 없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본 뒤 투자 리스트에 올리는 것을 검토해보겠다”면서 사겠다는 대답은 피했다.

전략3=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한다.
아는 주식에만 투자하는 L씨의 전략은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하는 전략과 그대로 연결된다. 그가 사고파는 주식은 삼성전자 SK텔레콤 삼성전기 삼성SDI 롯데칠성 롯데삼강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지주 포스코 등이다.

그 는 “SK텔레콤이 액면분할을 하기 직전에 SK텔레콤을 사라고 친구와 주위 사람들에게 권고했으나 ‘그렇게 비싼 주식을 어떻게 사느냐’는 대답만 들었다”며 “비싼 주식을 살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이긴다”고 강조했다.

전략4=대박이 없다는 것을 안다.
L 씨는 “그동안 주식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외환위기와 ‘9-11테러’ 같은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그렇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위기가 없을 것이며 있어서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살 때 목표수익률을 10~20%로 잡고 있다”며 “이익이 10%면 은행 예금의 3배 이상 되는데도 개인투자자들은 그다지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낮게’ 수익률을 잡은 그는 지난해 60%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냈다. 올해도 이미 25%를 올렸다. L씨는 “앞으로 주가가 많이 빠지면 투자할 것이지만 현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이미 많은 수익을 낸 만큼 무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유를 부렸다.

전략5=남들과 반대로 청개구리처럼 한다.
그는 객장에 손님이 2~3명밖에 없어 썰렁할 때 주식을 산다. 반면 객장에 손님이 넘쳐나 아줌마 등 뒤에서 애가 울어 제끼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식 사달라고 할 때는 주식을 내다 판다. ‘9-11테러’ 때도 다른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주식을 헐값에 내다팔 때 조용히 주식을 샀다.

L씨는 “신문에서 주식이 대폭락해 투자자들이 자살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면 주식을 사고, 주가가 폭등했다는 기사가 주요기사로 다루어지면 주식을 판다”며 “주식투자는 철저히 대중과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심뽀를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4. 대전 L씨의 주식투자 성공 10대전략<하>

대전 L씨의 투자일지④ "여고졸업생이지만 주식투자에 꿀릴 것 하나도 없다"

대전의 L씨는 고등학교(××여고)만 나왔다. 이는 주식투자에 성공하는데 ‘학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소용없다. 질러야 한다고 판단될 때 과감하게 지를 수 있는 결단력과 실천력이 있어야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면 돈벌 수 있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말해줘도 소귀에 경 읽기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실천하지도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전략6=절대로 남의 말은 듣지도, 맡기지도 않는다.
L 씨는 2000만원으로 5억원을 만 든 뒤 5억원을(주위에 아는 사람 7000만원과 함께 5억7000만원,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별도로 소개할 예정임) 모 지점장에게 맡겼다가 ‘깡통’을 찬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5억7000만원이 고작 30만원으로 쪼그라드는 게 꿈이 아닌 생시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겪었다.

그는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절대로 남의 말은 듣지도, 맡기지도 않는 철칙(鐵則)을 세워두었다”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철칙은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그가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주요 증권회사 투자전략팀장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증권방송을 보면서 증시흐름을 놓치지 않고 체크한다.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 정보를 듬뿍 받아들이되,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나름대로 소화시켜 의사결정에 참고를 하는 것이다.

전략7=외국인을 따라 한다. L씨의 10가지 전략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다. 그는 “외국인이 사기 시작할 때 따라 매수했다가 외국인이 매도하기 시작하면 파는 ‘외국인 따라하기’가 외국인 영향력이 큰 요즘 가장 지키기 쉬우면서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외국인을 따라 하다 보니 그가 주로 매매하는 종목은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국민은행 등 업종 대표주이다. 이런 주식들에 투자하다 보니 물려도 크게 물리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보너스도 얻는다.

그 는 “외국인이 사고파는 종목은 세계적 경쟁력이 있는 수출 대표주와 내수시장에서도 외국 기업과 경쟁해 높은 이익을 내는 업종 대표주”라며 “외국인이 어떻게 주식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고 있는데 개인들은 그 정답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곳에서 틀린 답을 찾으려다 손해를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략8=좋은 패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20 세기 최고의 투자자로 평가받고 있는 워렌 버핏은 ‘주식투자를 3진 아웃 없는 야구’로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볼을 3번 때리지 않고 그냥 서 있으면 3진 아웃당한다. 하지만 주식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높은 수익률을 내 줄 것으로 확신하는 종목)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리 기다려도 3진 아웃되지 않는다.

L씨도 “시간은 내 편”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주식이 나타날 때까지 주식을 사라는 유혹을 끝끝내 뿌리치고, 기다린다. 그렇게 해서 산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목표가격에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증시 상황이 갑자기 나빠져 주가가 떨어지면 손절매를 하고 다시 기다린다. ‘강태공 전략’을 취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파는 데이트레이딩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전략9=신용-선물-옵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L 씨는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안다. 선물-옵션을 한번도 투자해보지 않은 그는 “선물-옵션은 어려워 똑똑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여고밖에 나오지 않고 머리도 그다지 좋지도 않은데 남 좋은 일 시켜줄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선물-옵션에 손을 대느냐”고 잘라 말한다.

신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용이란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인데, 빚에는 만기가 있다. 돈을 갚아야 하는 날이 되면 주식을 팔기 싫어도 억지로 팔아야 하기 때문에 이익을 충분히 누릴 수 없다. 또 만약 손해가 나면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과 지급이자로 손실이 커진다”며 “돈을 빌려서는 절대로 투자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전략10=이익은 챙긴다.
L 씨는 지난해 60% 수익을 올린데 이어 올해도 벌써 25%의 높은 수익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주식투자 원금은 7억~10억원 정도. 절대로 10억원을 넘기지 않는다. 그는 “이익이 나면 원금만 남기고 인출해 국채를 사두었다가 돈이 많이 모이면 아파트를 산다”고 밝혔다.

이는 주식에서 번 돈 5억원을 모두 맡겼다가 한꺼번에 날린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 따른 것. ‘숲 속에 있는 새 10마리보다 손안에 있는 1마리 새가 더 소중하다’는 격언을 그는 철저히 지킴으로써 외환위기와 같은 뜻하지 않은 폭락장이 오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종자돈은 안전하게 보존시키고 있는 것이다.





5. "돈 있어야 사람대접", 처녀 때부터 종잣돈 모아

L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20살 때부터 이재에 눈을 떴다. 첫 월급을 받은 때부터 전체의 3분의 2는 무조건 저금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월급이 1만5000원이었습니다. 이중 5000원으로 생활하고 1만원은 저금했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돈을 써야 했기 때문에 가급적 모임을 피했습니다. 연애는 물론 하지 않았구요.”

그 는 은행에 예금했다가 10만원이 되면 찾아서 육촌언니에게 맡겼다. “당시 사채(私債) 시장에서 금리는 월4~5부나 됐습니다. 육촌언니가 서울에서 집 장사를 했는데 항상 돈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10만원을 모으기가 어려웠지 일단 10만원을 월4~5부의 높은 금리로 맡기자 그 뒤부터 50만원 100만원 300만원 등으로 급속히 늘었습니다.”

"5년 동안 거지처럼 모아 결혼할 때 내집을 사서 살림 시작"

L씨는 5년 동안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충남 소도시에서 집(단독주택)을 사서 결혼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이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가고 싶은 곳도 많은 20살부터 25살의 처녀 시절은 돈 버는 사이에 훌쩍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재테크에는 일가견이 있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신랑은 가난하더라도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사람을 선호했다. 그의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 등에 대해서도 다음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서 출퇴근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가 버스 정류장 6개였습니다. 걷기에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목표한 돈을 모을 때까지 이를 악물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그렇게 억척을 떨며 돈 모으는 것을 보고 ‘또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L씨가 이처럼 돈 모으는데 억척을 떤 것은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집이 비교적 부유했습니다. 머슴이 7~8명이 있을 정도로 논밭이 많았고, 방앗간 4개와 큰 과수원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군(郡)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요. 할아버지가 그 지방 향교의 전교를 하셨고 아버지 어머니가 효자-효부 상을 받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이 어린 나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차릴 정도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대우’는 그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줬다가 모두 떼이고 말았습니다. 오빠도 상대를 졸업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했고요. 논밭을 팔고 머슴을 내보내고 방앗간과 과수원도 팔아야 하는 등 집안이 급속도로 기울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람 인심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대접을 받으려면 돈이 있어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돈이 있어야 사람 대접 받고 좋은 신랑을 만날 수 있다"는 목표 세우고 악착같이 모아

L 씨가 이렇게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이유는 또 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미인도 아닌데 좋은 데 시집가려면 멋쟁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멋쟁이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5년 동안 집 한 채 살 정도의 돈을 모은 뒤부터는 본격적으로 멋쟁이가 되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매월 한번씩 서울 명동에 가서 최신 패션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 직장과 거리에서 그는 튀는 패션으로 ‘멋쟁이’로 통할 정도였다. 아무리 5년 동안 돈을 모았다고 해도 지방 소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명동 패션으로 치장하려면 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명동 ‘부띠끄’에 가서 옷을 맞춰 입으려면 몇 개월 치 월급이 필요할 정도였다.

여기서도 그의 ‘재테크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동대문 시장의 포목점에 가서 원단을 도매 값으로 끊어 명동 부띠끄에 가서 옷을 맞췄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띠끄에서 직접 옷을 맞추는 것보다 50%이상 싸게 할 수 있었습니다.”





6. "재테크에도 궁합이 있다"..부동산에는 인연없어

“그 때 땅을 샀으면 지금은 인생이 바뀌었을 겁니다.”

L씨는 1987년 중반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주식투자로 번 5억원 가운데 2억원을 빼내 땅을 사자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전 변두리 지역의 땅(야산 등) 값은 평당 7000~8000원 정도였습니다. 길게 보면 부동산을 사 두는 게 수익률이 높고 안전한 투자라고 생각해 땅을 사두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재테크에도 궁합이 있는 법이었다. 주식투자를 귀신처럼 잘한 그에게 부동산 투자는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땅을 사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었습니다. 부인이 투기꾼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잘 나가고 있는 직장에서도 쫓겨날 것이라는 게 반대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테크는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 몰래 땅을 사려고 며칠 동안 복덕방을 찾아가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런데 궁합이 맞지 않는 일은 어차피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남편 반대와 복덕방 아저씨 잘못 만나 땅투자 못해 수백억원 벌 기회 날려...

“복 덕방 아저씨와 땅을 보러 다니는데 모두 산꼭대기에 있는 땅만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아줌마(당시 30대 중반)가 땅을 산다고 하니까 (깔보고서) 잘 팔리지 않는 땅을 억지로 떠넘겨 바가지 씌우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복덕방 아저씨도 잘 못 만난 것을 보니 땅을 사지 말라는 뜻이구나 하고 생각해 땅 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지 금 그 땅의 가격이 200~300배나 올랐다. “그 때 남편 말을 어기고, 아니꼬운 복덕방 아저씨를 무시하고 땅을 샀더라면 인생이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역시 재테크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과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곤 합니다.”

게다가 L씨는 그 땅을 사지 않은 돈과 주식투자에서 번 돈 및 이웃집 새댁의 돈을 합한 5억7000만원을 남편의 친구인 ××증권 ××× 지점장에게 맡겼다가 깡통을 차고 고작 30만원만 건진 뼈저린 아픔을 겪었다(이 사연은 나중에 소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그다지 가슴 아프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쉽기는 하지만 그게 다 그렇게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5억7000만원을 날린 뒤 500만원으로 다시 시작해 날린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번 것에 대해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부동산과는 궁합 안맞는 듯, 주식투자에 전념하며 번 돈으로 어려운 이웃 돕기 앞장

그 렇다고 L씨가 부동산과 아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듯이 그는 결혼할 때 집(단독주택)을 ‘혼수품’으로 장만했을 정도로 부동산 투자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35평 아파트를 살 때도 이런 재테크 방법을 적용했다. “당시 시가는 1억3000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시세대로 다 주고 사는 것은 재테크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복덕방에 얘기해 둬 급매물로 나오는 것만 소개해달라고 해서 시가보다 2000만원(15%) 가량 싸게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아파트의 시가는 2억1000만원 정도다.

L씨는 지금 사는 아파트 외에 한 채가 더 있다. 아들이 결혼하면 살림을 내주기 위한 것이다. 또 둘째 아들을 위해서도 아파트를 한 채 더 살 계획이다.

그 는 35평보다 더 큰 집을 사는 것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집이 크면 청소하기가 어렵고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갑니다. 청소를 위해 파출부를 부르는데 돈이 들고, 전기료 수도료 가스료가 더 비쌉니다. 이런 비용은 한번 지불하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왜 어렵게 번 돈을 그렇게 헤프게 씁니까? 그럴 돈이 있으면 주변에 못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훨씬 낫습니다.”(그가 드러나지 않게 남을 돕고 있는 것에 대해선 나중에 “돼지가 되지 말라”는 주제로 소개하겠다)





7. '용한 지점장'에 맡겨 5.7억원 '깡통' 아픔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너무 잘 알고 익숙해 진 것에 대해선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얼토당토않은 엉터리 같은 일을 당할 때 쓰는 말이다.

L씨는 이 속담이 뜻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운명의 시간이 외환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1997년 4월말, 남편이 출근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진 한마디가 그를 한동안 회복불능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친구 중에 ××증권 ××지점장이 있는데 주식투자를 아주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이제 주식투자 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친구한테 5000만원만 보내서 맡겨보지 그래?”

종합주가지수가 1994년11월 1100선을 넘어선 뒤 2년 넘게 줄곧 하락해 주식투자를 귀신처럼 잘 하던 L씨도 상당히 고전하던 때였다.

L 씨는 “맡기기는요, 주식투자는 스스로의 책임과 판단에 따라 스스로 해야지요.”라고 웃으며 가볍게 받아넘겼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해서 5억원 이상 벌고 난 뒤에는 주식투자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몇 년 전부터 당뇨병 증세가 나타나 주식투자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더 악화될 우려도 있었다.

잘 한다는 증권사 지점장에 5억7000만원 맡겨 5개월만에 30만원만 남는 깡통

‘그 래, 이제는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기고 건강을 챙기면서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L씨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지점장에게 이왕 맡길 바에는 쩨쩨하게 5000만원만 맡기지 말고 5억원을 보내볼까’라고 생각하며 옆집의 새댁에게 “이제 주식투자를 직접하지 않고 잘 하는 지점장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평소에 자신을 어머니처럼 믿고 따르던 옆집 새댁은 자기 돈도 함께 맡겨 불려 달라며 7000만원을 주었다.

그는 한달쯤 고민하다가 자기 돈 5억원과 옆집 새댁 돈 7000만원을 합해 5억7000만원을 ××지점장에게 보냈다. 1997년 6월초였다. 물론 남편에게는 5000만원만 보냈다고 얘기했고, 그 지점장에게도 남편이 물으면 5000만원만 보내왔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하지만 그해 7월, 태국이 외환위기에 휩싸이고 기아자동차가 쓰러지면서 한국 경제도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종합주가지수도 ‘600선이 쌍바닥에 철판바닥이어서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상승은 약하고 하락은 많은 약세장이 이어졌다.

L씨 는 느낌이 좋지 않아 3번에 걸쳐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주식을 모두 팔고 현금화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지점장은 그 때마다 “이제 바닥인데 지금 팔면 엄청난 손해”라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며 주식을 팔지 않았다.

그리고선 1997년11월24일, 한국은 마침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자금을 신청하면서 외환위기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600선에서 등락하던 종합주가는 순식간에 400선 아래로 수직 낙하했다. 그의 계좌는 깡통으로 바뀌어 남은 돈은 고작 30만원이었다.

L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돈 5억원이야 내 잘못으로 날렸으니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옆집 새댁 얼굴을 떠올리니 앞날이 캄캄했다. 남편이 알면 왜 5000만원만 보내랬더니 5억원이나 보냈고, 옆집 사람까지 끌어들였느냐며 추궁당하고 이혼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옆집 새댁돈도 함께 맡겼다 깡통 차

일단 남편 모르게 수습에 나섰다. 옆집 새댁을 만나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 내가 매월 100만원씩 줄테니 자신의 남편이 알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투자신탁회사에는 매월 100만원씩 납입하면 5년 뒤에 8300만원이 되는 적립식 상품이 있었다. 가서 그 통장을 만들어 오면 대신 넣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새댁은 그냥 매월 100만원씩 달라고 했다.

당시 남편 월급은 140만~150만원이었다. 이 가운데 100만원을 새댁에게 주고 나머지로 생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불어 닥친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일요일 오전, 늦은 아침을 마치고 남편이 모처럼 낮잠을 자겠다면서 안방에 들어간 지 10분도 안돼서 초인종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옆집 새댁과 신랑이 쳐들어온 것이다.

남편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두 집안을 풍지박살을 내냐”며 벼락같이 화를 냈다. 결혼한지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노여움이었다. 찬바람이 휭휭 불었다.

하지만 L씨는 워낙 저지른 죄가 큰 탓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남편의 처분에 맡겼다. 10여일 쯤 끙끙 앓던 남편은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을 하면 갈라서겠다"며 “앞으로는 잘 살아보자”고 했다.

옆집 새댁에게는 절반을 물어주기로 하고 어렵사리 ‘합의’를 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옆집 새댁이 그렇게 난리를 친 것이 너무 서운했지만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구나 하며 속으로 삭혔다.

그 렇게 상처가 아물어갈 무렵, L씨는 남편에게 “도저히 이대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1000만원만 더 해달라”고 부탁했다. “옆집 새댁에게 1000만원이라도 더 주어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남을 믿고 맡기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새로운 출발의 결의를 다졌다.



8. '점과 꿈'.."7년간 800배 수익→이제는 쉴 때"

“앞으로 7년 동안 돈이 물밀 듯이 들어올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이혼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인생이 땅바닥이고 이혼 위기에 처해 있으며 길거리에 나앉을 운세다. 그렇지만 이혼하지 않으면 운세는 술술 풀릴 것이다.”

L 씨는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차고 ‘이혼위기’에 몰려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점(占)을 보러 갔다. 매일 매일 죄인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지내는데 어느날 친구가 와서 위로로 “근처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있는데 한번 보러 가자”고 권유한데 따른 것. ‘이렇게 망가진 판에 웬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나빠지기야 하겠느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그런데…. 은행을 다니다가 역술을 공부해서 역술원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는다던 젊은 ‘점쟁이’는 뜻밖의 말을 했다. “앞으로 7년 동안 돈이 물밀 듯이 들어 온다”고. ‘지금 이혼을 당할지가 코앞에 닥친 일인데 이혼 당하지 않을 방법이나 알려주지 않고…’

힘없이 “왜 이렇게 인생이 꼬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시할아버지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시할아버지가 왜 나한테 이렇게 심하게 심술을 부리시냐”고 되물었다. “시아버지가 매우 효자였는데도 시할아버지가 며느리(시어머니)를 매우 미워했다.
시누이는 시할아버지 제사를 잘 모셔 아주 잘 사는데 당신은 시할아버지를 잘 모시지 못해서 그렇다. 앞으로 제사를 잘 모시고 부적을 써 줄테니 시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태워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점이 예언한 대박.."이혼 위기 넘기면 7년 동안 돈이 밀물처럼 들어올 것"

L씨는 하지만 당장 먹을 것도 없는데 비싼 부적을 어떻게 사느냐며 복채(5000원)만 주고 나왔다. 복채를 얼마 내야 하느냐고 하자 알아서 달라고 해서 그때 가진 돈이 그것밖에 없어서 5000원만 주었다고 한다.

많 지는 않지만 그래도 있는 것을 톡톡 털어 준 복채 덕분이었을까? 며칠을 고민하던 남편이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그냥 살자”고 했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던 19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320까지 폭락했을 때 500만원으로 다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앞에서 소개한 그대로였다. 500만원은 7년이 지난 현재 40억원 이상으로 불어나 있다.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돕는데 쓴 돈을 합하면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 점쟁이의 말이 옳았는지, 아니면 그 때 주가가 원래 많이 올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돈이 밀물처럼 벌렸다.

“하루에 1억원 안팎을 벌 때가 많았고 한 번은 1억3000만원을 벌기까지 했습니다. 밀물이 아니라 해일이라고 할 정도였지요.”

상 황이 이처럼 바뀌자 사람의 마음도 변했다. 7000만원을 잃어 난리를 쳤던 옆집 새댁은 가끔 새벽에 전화해서 흐느껴 운다고 한다. “어머니처럼 믿으며 친하게 지냈는데, 아줌마한테 너무 심하게 해서 병(당뇨)이 더 악화된 것 같다”며 뉘우친다는 것.

며칠 전에는 떡을 해서 집으로 찾아와 꼭 끌어안고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며 “앞으로 자주 찾아 뵙겠다”고 말하고 돌아갔다. 요즘은 거의 아픈 과거 이전의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중이다.

남 편도 “당신을 만나 내가 사람 노릇을 하며 산다”고 고마워한단다. 신혼 초에 남편이 월급 거의 대부분을 시댁에 갔다 주어도 이렇다할 불만을 하지 않았고, 요즘도 남편이 직장 동료들에게 가끔 저녁을 대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처녀 때 절실히 느꼈던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하고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꿈이 보내주는 경계.."코스닥에서 돈 벌 수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자제"

L 씨는 현재 주식을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4월7일 삼성전자 주가가 60만원을 넘어서던 날 59만원에 판 뒤 주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3월말부터 코스닥의 IT주식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코스닥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했으나 지금은 유보상태다.

“1999년말에 거래소 종목을 모두 팔고 2000년 1월에 코스닥 종목을 사서 이익을 많이 봤습니다. 지금도 거래소는 당분간 쉬고 코스닥이 갈 것이라는 느낌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식투자를 (가급적) 하지 않고 쉴 생각입니다.”

코스닥 주식을 사면 돈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가 코수닥 주식매수를 유보한 것은 최근 잇따라 꾼 꿈 때문이다. “최근에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남편이 아들에게 사준 아반테 승용차를 끌고 나가 티코로 바꾼 꿈을 꾸었습니다.

또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분이 내가 집안을 도둑맞았다며 혼을 놓고 우는 꿈을 꿨다고 말해 주면서 조심하라고 얘기했습니다. 7년 동안 돈이 물밀듯이 들어올 것이라고 하던 점을 본게 1998년 6월이었습니다. 만7년이 되려면 2달도 안남았습니다. 7년마다 돌아오는 운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주식투자에 그 어느 때보다 조심할 생각입니다.”

점과 꿈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점을 믿고 좋은 것에 대해선 과감하게 실천하고,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리미리 조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L씨처럼 크게 성공하는 사람의 살아가는 지혜다.







9. "돼지가 되지 마라".."번만큼 베풀어야 더 번다"

대전 L씨의 별명은 ‘일본 아줌마’다. 전기 한등, 수돗물 한 방울도 아낄 정도로 억척스럽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는 그다지 아까워하지 않는 그를 보고 남편이 지어준 것이다. 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돈만 챙기는 구두쇠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L씨의 좌우명 가운데 하나는 ‘돼지가 되지 마라’는 것이다. 그는 “사소한 것에는 ‘또순이’처럼 알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아껴서 모은 돈을 쌓아 두지만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은 먹을 것만 찾아 꿀꿀대는 돼지와 진배없다.

주위의 못사는 사람들에게 베풀며 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부(富)는 똥과 같아서 한 곳에 쌓아놓으면 썩어 냄새가 진동하지만 널리 골고루 나누면 농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키운다’는 격언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십일조는 내지 않지만 달걀 라면 쌀 및 학자금 등 어려운 이웃 도와

그 는 달걀이나 라면을 한판이나 한 상자를 사는 때가 거의 없다. 8판, 10판, 10상자를 산다. 근처에 있는 할인점에 가서 이렇게 사면 무슨 장사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것이다. 4만5000원 하는 20kg 짜리 쌀을 사서 근처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들에게 주기도 한다.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어렵게 애를 키우면서 교육하는 경우에는 학자금도 대준다.

L씨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 봐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쓰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스 스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합하면 십일조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십일조라는 말이 성경에 나와 있으면 지키겠지만, 신약성서 어디를 봐도 10계에 십일조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냥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과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합하면 거의 십일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는 것을 하나님도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교회에서 들으면 화를 낼 소리이지만, 그의 말은 거침이 없다. “남을 도와주면 스스로가 즐겁습니다. 아까운 것이 아니라, 떳떳합니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고 미안할 뿐입니다.”

전기 수도 가스는 끔찍히 아껴 별명이 '일본 아줌마'

L 씨를 ‘일본 아줌마’라고 ‘놀리는’ 그의 남편도 남 도와주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아버지(시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36세의 젊은 홀어머니와 형님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장학금을 받으면서 어렵게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그 뒤 6년 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형님에게 집을 지어주고, 그 뒤 1년 동안 모은 돈은 여동생 결혼자금으로 썼을 정도입니다.”

시골에서 (다른 형제자매보다) 공부를 잘해 어렵게 대학을 다녀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 것이다. ‘나 때문에 형이나 동생, 누나와 여동생이 고등학교 대학교 갈 꿈을 포기하고 일찍 생활전선에 나섰다. 내가 대학에 졸업해서 취직하면 가족의 생계는 내가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루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L씨의 남편의 경우가 이와 똑같다. 남편의 형님도 공부를 잘 하셨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였고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동생에게 대학교 진학을 양보하고, 농사일을 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것마저 시기한 탓인지, L씨가 결혼한 지 2년 반쯤 지난 뒤 시아주버니께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편은 술 한 잔 제대로 못 마시고, 학생들에게 ‘단벌 신사’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형수와 조카 4남매의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남편은 결혼한 지 10년 동안 집에 돈 갖고 온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많이 울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그게 다 운이 7년 동안 돌아서 많은 돈을 벌게 해준 밑천으로 작용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10. 성공한 5가지 이유..의지와 준비, 실천력

‘50대 초반의 아들 둘을 둔 여고 졸업한 전업 주부 아줌마.’

단돈 500만원으로 7년 동안 800배가 넘는 40억원 이상으로 불린 대전 L씨는 매우 평범한 보통 사람이다. 그의 경력과 외모 등은 매일 출퇴근길에서 마주치는 옆집 아줌마와 똑같다.

그 런 L씨가 주식투자를 잘 해서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개미(소액 개인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신출귀몰하는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대박의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자신이 정한 투자원칙을 지키면 돈은 저절로 벌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큰돈 버는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잘 될 싹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한다. 사람도 사회에 처음 발디딜 때 어떤 준비를 하느냐로 평생이 좌우된다. 어떤 직업을 택하고, 어느 직장에서 시작하느냐에 따라 5년, 10년, 20년 뒤의 인생이 달라진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어느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대전 L씨도 몇 가지 눈에 띄는 독특한 점이 있다.

부자 되겠다는 의지= 첫째, 그는 부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군 부자’였던 집안이 급속도로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말 뿐이 아닌 철저한 준비= 둘째, 부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돈쓰고 돌아다닐 시절인 스무 살에서 스물다섯 살까지 5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친구를 만나지 않아 ‘외톨이’가 됐고, 연애는 돈 모은 뒤에 근사하게 하자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 먹을 것, 입을 것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이유가 있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사람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돈 버는 것보다 돈 쓰는 것을 먼저 배우기 때문이다. 외상(신용카드)으로 외식을 자주하고 비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평생 그럴듯한 내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전세와 임대아파트를 전전한다”는 것이다.

톡톡 튀기=세째, 부자될 준비가 끝난 뒤부터는 뭇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 위해 톡톡 튀는 옷차림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믿고 최신 유행 패션으로 몸을 꾸몄다. “싼 옷을 걸치기가 싫었습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아 앞으로도 돈 버는데 자신이 생기자 이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시골(지방 중소도시) 처녀가 결혼을 잘 하려면 촌티를 내지 않고 서울 멋쟁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실천력=네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실천력이 강했다. 그는 신랑감으로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하고 직장도 튼튼한 의사나 대학교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선생님인 남편과 결혼한 것도 좋은 대학을 나왔고 처음 만났을 때 외모가 훤칠하고 인상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한 뒤 남편에게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교수가 되도록 자신이 (돈 벌어) 학비를 대면 교수 사모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 버는 일이야 지금이나 그 때나 자신 있었거든요.”

하 지만 ‘교수 사모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이 “선생님으로 만족한다. 대학원 보낼 돈이 있으면 (대학원 다닌 것으로 생각할테니) 나에게 달라. 어려운 살림에 대학 등록금과 하숙비를 대준 형님께 갖다 드렸으면 좋겠다”면서 대학원 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운명에 거역하지 않는 유연성=다섯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는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 내편으로 삼는 유연성이 있었다.

L 씨는 정형외과 의사와 결혼할 뻔했다고 한다. 인물이 귀공자처럼 훤칠했고 그가 원하던 의사였다. 하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사고로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것이었다. 선을 본 뒤 네번 만나자 약혼하자고 해서 결혼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오빠 동생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 결혼하고 싶었으나 ‘내 배필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 는 1997년말 외환위기 때 5억7000만원을 날렸을 때도 ‘운명이려니’하고 받아들였다. 2개월 이상 스트레스를 받아 혈당치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가자 ‘이러다 큰일 나겠다’고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 소털처럼 많은 앞날을 준비하자고 생각을 다르게 하자 인생도 밝은 쪽으로 바뀌었다.





11. "사고 싶을 때 참아야 주식투자 성공"

주식투자의 귀재인 L씨가 가장 강조하는 말은 “사고 싶을 때 매수하는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월7일 삼성전자를 59만원에 판 뒤 아직까지 주식을 사지 않고 있다.

“28 일 오전에 포스코를 사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많이 빠져 반등이 나올 것을 예상한데다 실제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경제가 어렵다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보도를 생각하고 꾹 참았습니다.” 28일 포스코를 샀으면 29일 엄청난 손해를 봤을 것이다.

“29일에도 종합주가가 20포인트 정도 하락하면 사볼 생각으로 개장 전에 돈을 MMF에서 증권계좌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더 떨어질 것 같아 손이 나가지 않아(그는 HTS로 주문을 내기 때문에 클릭을 해야 함) 오전 11시쯤 다시 MMF에 넣으라고 전화했습니다. 종합주가가 860선까지 떨어지면 단기 매수를 고려해볼 생각입니다.”

그 는 “주식을 사서 먹을 때의 기쁨보다 현금을 갖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질 때 느끼는 기쁨이 더 클 때가 많다”며 “현찰을 갖고 있으면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섣불리 나서기보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을 때까지 참고, 참고, 참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고, 참고, 참아야 주식투자에서 돈 번다

그의 이런 참을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결혼한 뒤 10년 가까이 이렇다할 말 한마디 못하고 참고 참으며 지낸 덕분이다. 그는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이라는 속담을 실제로 지켰다고 한다.

“결 혼하고 처음 3년은 입을 막고 아무 말 하지 않았고, 그 다음 3년은 눈을 가리고 거슬리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3년은 아예 귀까지 막고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진짜 식구로 인정해 주더군요.”

L씨가 이렇게 10년 동안 참을 인(忍)을 마음에 새기며 산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남편이 월급을 거의 대부분 시어머니와 형님 댁에 갖다 준 것이다. “남편에게 가끔 애들에게 자장면이라도 사주어야지 월급을 모두 시댁에 갖다 주면 어떻게 하느냐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습니다.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요.”

다른 하나는 시어머니의 ‘질투(?)’였다. “시어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남편과 나 사이에서 주무시곤 했습니다. 결혼한 지 27년 동안 시어머니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고 내내 무서워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살 바에야 이혼하자’는 생각이 가끔 들었지만 ‘내가 남편하고 사는 거지 시어머니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10년 동안의 ‘3-3-3년 인(忍)’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그는 비교적 젊을 때부터 당뇨가 생겼다. “혈액형이 O형이어서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 보니 속병이 생긴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에 대해 그다지 원망하지 않는다.

10년 동안의 인내, 시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이혼 위기도 넘겨..남은 인생은 탄탄대로

“시 어머니께서 올해 초에 10만원을 보내셨습니다. “너처럼 착한 애가 없다”시면서 “이 돈 갖고 병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미워한다고만 느꼈는데 이제야 겨우 사람대접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이 오히려 인생에 도움이 됐구나하고 느꼈습니다.”

L씨는 지금까지 2번의 이혼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지난 7회에서 소개했던 것으로 남편 친구인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찼을 때였다. 다른 한번은 결혼하고 10년 동안 살던 지방 중소도시를 떠나 대전으로 이사한 직후인 1985년말이었다.

“대전으로 이사할 때 그전에 살던 집을 판 돈(1250만원)으로 대전에서 집을 사려고 했습니다. 당시 17평짜리 주공아파트 가격이 650만~700만원 정도여서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재테크에 일가견이 있지 않습니까? 처음 가보는 대전의 사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전세를 살다가 6개월 정도 지난 뒤 집을 사겠다는 계획을 짰습니다. 전세는 450만원이었습니다.”

그 런데 어느 날 손위 동서가 찾아와 그 돈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800만원 정도 빚이 있는데 그 돈으로 갚겠다는 것이었다. 남편도 주라고 했다. “이 돈은 내꺼니까 못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남편의 말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깜짝 놀라더군요. 말싸움이 대판 벌어졌지요.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그러자고 했습니다.”

L씨 는 “부부 사이에 말싸움이 일어나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까지 가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럴 때는 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가며 한가지 씩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돈도 벌 수 있고 인생도 풍요로워집니다. 기분대로, 감정대로 사는 것은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내팽겨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옵니다.”라고 강조한다.





12. "주가 폭락은 좋은 주식 싸게 살 기회"

L씨는 주가가 오르는 비싼 주식에만 투자한다. 이런 주식들은 외국인들이 많이 거래하기 때문에 ‘낙폭 과대 저가대형주’보다 더 많이 오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삼성SDI 등 고가 우량주들은 좋은 주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종목 분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주식들이 떨어졌을 때 샀다가 오르면 파는 것만 반복해도 1년에 50%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쉽고 안전한 길이 있는데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종목들을 쫓아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개인들이 이른바 ‘대박주’를 찾아 루머에 휩쓸리기 때문에 돈을 잃는다”며 “외국인들이 정답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그것을 베끼지 않고 굳이 오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시간과 정력 낭비인 동시에 돈도 잃는 미련한 짓”이라고 지적한다.

검증된 우량주만 거래, 주가 폭락할 때는 큰 돈 벌 기회가 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흥분된다

“외 국인들이 팔 때는 그냥 쉬면서 사태 추이를 봅니다. 주가라는 게 하락한다고 한없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외국인 매도가 끝나고 다시 사기 시작할 때 많이 떨어진 우량주는 다시 상승합니다. 그때 사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내서 팔면 됩니다. 따지고 보면 주식투자는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가급적 주식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그게 다 그 사람 복의 한계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200만원에서 오르내리던 1999년 11월, 주위 사람들에게 SK텔레콤을 사라고 얘기했습니다. 액면분할 얘기가 나올 때였지요. 한결같은 반응은 그렇게 비싼 주식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SK텔레콤을 사서 액면분할 이후에 30만원(분할전 300만원)이 넘어 팔아 50% 수익을 냈습니다. 돈 벌 수 있는 길이 훤히 보여 얘기해줘도 듣지 않을 때는 가끔 얘기를 듣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L씨는 이른바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용하다는 ×××지점장에게 5억7000만원을 맡겼다가 ‘깡통’을 찬 뒤 스스로의 ‘감(感)’가 판단에 따라 주식투자를 한다. 그가 주식을 사고 파는 원칙은 ‘남과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가 되라’는 것이다.

“주가가 많이 올라 객장에 아이 업은 아줌마가 등장하기 시작할 때 주식을 사서는 돈을 벌기보다 잃을 위험이 큽니다. 주가가 많이 빠져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주식을 헐값에 내다팔 때는 거꾸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용기와 베팅할 수 있는 실천력이 필요합니다. 남들 뒤를 쫓아가서는 돈 버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할 수 있는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들어 외국인 매도로 우량주 주가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주식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소나기는 피하고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아야 하지만, 결국 칼은 땅에 떨어지고 소나기는 얼마 안가 그치게 마련입니다. 주식시장도 자연 섭리를 따르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고 겁먹지 말고 오른다고 흥분해서는 안됩니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사고 싶은 충동을 참고, 팔아야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개별 종목을 사고 팔 때도 마찬가지다. “매수한 주식이 모처럼 상한가 행진을 할 때도 냉정하게 판단해야 손해 보지 않고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통상 중소형주들이 상한가 행진을 시작할 때는 거래량이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상한가를 3~5번 치면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상한가 매수잔량이 수백만주 쌓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더 오를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고 과감하게 팔아야 합니다. 거래량이 는다는 것은 그동안 매집했던 큰손들이 판다는 뜻이며, 주가는 조만간 하한가 행진으로 바뀔 것입니다.”

연50% 이상의 수익을 내지만 수수료 아껴 남 도와주기 위해 HTS 통해 거래

주 식투자라면 자신있는 그는 주식 매매를 HTS(홈트레이딩시스템)에서만 한다.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적은 수수료율 차이가 많은 수수료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요즘은 거래를 거의 하지 않지만 많이 할 때는 한달에 수수료 차이가 수백만원이나 납니다. 어차피 증권회사 직원들 조언을 듣는 것도 아닌데 굳이 비싼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지요. 그럴 돈이 있으면 아껴서 어려운 사람 돕는 게 훨씬 나은 일입니다.”

L씨의 주식투자 경력은 이제 19년째다. 어지간한 펀드매니저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주식시장에서 격전을 치룬 노장(老將)이다. 그의 주식투자 실력을 급수로 따진다면 입신(入神)의 단계인 9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부의 세계를 초월한 신의 경지로 삶과 죽음, 주식과 돈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수준인 셈이다.

“7년 전 점쟁이 말대로 올 6월부터는 주식투자에 매우 조심할 것입니다. 최근에 돈지갑을 잃고 집이 도둑맞는 꿈을 꾸는 것도 주식투자를 자제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식투자를 하느라 악화됐던 당뇨와 무릎관절을 고치는데 중점을 두면서 주식투자는 1년에 2~3번,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때만 할 생각입니다.”

그는 최근 1주일 동안 몸무게가 1kg 빠지고 혈당도 440~460에서 195로 떨어졌다고 한다. “매일 저녁 9시부터 10시40분까지 집 앞 학교 운동장을 20바퀴 걸어서 돕니다. 우연히 만나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걸으니까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컴퓨터를 켜지도 않고 주식투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까 아주 편안합니다.”

“주식투자를 할 때는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밤 11시에도 야식을 먹어 순식간에 4kg가 늘었습니다. 당연히 혈당치가 급격히 높아졌고 관절 상황도 나빠졌지요. 요즘은 밤 9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으니까 병원 가는 것도 매주에서 3주에 한번으로 줄었고요. 관절 치료를 위한 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됐습니다.” <끝>

에필로그
대 전 L씨에 대한 시리즈가 게재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께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L씨의 연락처와 ‘점집’ 연락처를 문의했습니다. 인천의 황씨, 서울 일원동의 60대 할머니, 용인의 이씨, 현대모비스의 김씨, 강릉의 박씨 등등….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사드립니다. 점집 연락처는 메일과 전화로 몇 분에게 알려드렸지만, L씨 연락처는 본인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알려드리지 못했습니다. 혜량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워렌 버핏처럼 유명한 펀드매니저도 아닌데 L씨의 투자일지를 12회에 걸쳐 장기적 연재한 것은 L씨처럼 평범한 보통사람도 충분히 주식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박’의 환상을 버리고, 검증된 우량 주식들을, 증시 격언에 따라 매매하면 연30~50%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L씨는 보여줍니다.

이번 시리즈가 독자 여러분들의 성공투자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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